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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는거 같습니다. 지난주 방송되었던 그것이 알고싶다. 930회 방배동 미라 미스테리 사건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분들이 많았던거 같습니다.  죽은지 7년이 넘은 남편의 시신과 함께 생활해온 여인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다시 생각해 봐도 죽음 사람을 집안에서 7년동안 보관해 왔다는 것이 충격적인거 같습니다. 오늘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최근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으로 인해서 논란이 되었던 안중근 의사에 대한 내용을 소재로 하여 방송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목은 조슈번의 후예들이고 부제는 왜 안중근을 죽인가? 인데요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논란의 시작은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신당대지 소속 스즈키 다카코 중의원이 아베 내각이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했는데 이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인지, 일본 정부의 인식이 어떠한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  아베신조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해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로 알고 있다는 답변하면서 한일 양국간의 외교관계가 더욱 악화되기도 했었는데요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안중군 의사가 영웅이지만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안중군 의사는 과연 테러리스트이고 살해 혐의로 사형을 판결 받은 살인자일 뿐일까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안중군 의사와 관련된 재판과정과 그 배후 세력에 대해 파헤친다고 하는데요 이번 기회에 일본의 비뚤어지 역사인식과 그들의 추악한 범법 행위를  속시원하게 밝혀 줬으면 좋겠네요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그것이 알고싶다. 조슈번의 후예들-왜 안중근을 죽이는가?의 예고 편을 보니 안중근 의사의 재판과정에서 수상한 점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요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게 되고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는 7일간  재판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데요  사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법으로는  사형시킬수 없었는데 일본이 스스로 일본법을 어기면서 집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왜 일본은 자국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안중군 의사를 사형시키려 한 것일까요?

 

 1909년 10월 26일. 그날 사건의 피의자는 바로 안중근 의사였다. 사건 발생지는 중국 내 러시아 관할지역. 피의자가 한국인이고 피해자는 일본인인 상황에서, 재판관할권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 러시아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있었고, 따라서 처음엔 러시아가 안중근 의사를 취조했다. 그러나 취조 하루 만에 러시아는 전격적으로 일본에 안중근의 신병을 인도했고, 안중근은 일본 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안중근 의사는 전쟁 중 교전자의 자격으로 행한 일이니 자신을 포로로 취급해달라고 했으며, 자신은 일본법으로 처벌받을 수 없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일본 검찰과 재판부는 그 주장을 묵살하고 안중근에게 일본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사건의 실상을 파헤친 전문가들은 이 재판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한다. 우리는 이 재판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당시 재판 내용을 케이스로 만들어 미국, 독일, 프랑스의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과연 안중근 재판의 진실은 무엇이며, 그가 받은 선고는 정당했던 것일까?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예고편]

안중근 의사는 전쟁 중 교전자의 자격으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이었기 때문에 단순한 살인자로 취급당해서는 않되었고 전쟁중 붙잡힌 포의로 신분으로 취급을 받았어야 했지만 일본의 검찰과 재판부는 안중근의사의 요청을 묵살하고 일본법을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해 버렸는데요 그 배경이 수상합니다.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당시 안중근의사의 재판과정에는  일본정부의 재판부에 대한 압력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문서가 확인이 되었는데요  정부의 압력에 의해서 치뤄진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졌을리 없겠죠? 정부는 안중근 의사가 극형에 처해지길 원한다고 재판부에 압력을 행사했으니  재판관이 아무리 안중근 의사가 자국의 법으로 처벌할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일본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안중근 의사를 사형시킬수 밖에 없었겠죠?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를 전쟁포로가 아닌 단순 살인자로 사형시키도록 만든 배후 세력은 어떤 세력이 있었을까요?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판결의 배후 세력을 조슈번 출신의 사람들이 연관이 있는것으로  내용의 전개를 풀어가고 있는듯합니다. 그렇다면 조슈번은 무엇인가요? 조슈번이 생소하신 분들이 있을꺼 같아 검색을 해봤습니다.

 

초슈 번(일본어: 長州藩 ちょうしゅうはん 조슈한[*])은 지금의 야마구치 현에 해당하는 스오노쿠니와 나가토노쿠니의 2개 구니를 지배했던 일본 에도 시대의 번이다. 번주는 토자마 다이묘인 모리 가문(毛利氏)으로, 가격(家格)은 국주격(国主格)에 해당되었다. 번청은 오랫동안 하기 성에 두었기 때문에 하기 번(萩藩)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막부 말기에는 스오노쿠니의 야마구치에 있었던 정사당(政事堂)으로 번청을 옮겼기 때문에 스오 야마구치 번(周防山口藩)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하기 번・야마구치 번 시대를 통틀어 「초슈 번」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에도 막부 말기에는 사츠마 번과 함께 막부 타도 운동의 중심이 되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많은 정치가를 배출하여 「초슈바츠(長州閥)」를 형성했다. 「초슈바츠」는 당시 일본의 정치를 지배한 한바츠 정치(藩閥政治)의 영향으로 형성된 정치 세력이었다.  / [출처: 위키백과]

그렇다면 이 조슈번의 사람들이 왜? 안중근 의사를 사형시키는데 영향력을 행사한 걸까요? 그것은 바로 이토히로부미가 바로 조슈번 출신이었고  수많은 조슈번 사람들에게 이토히로부미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살려둘수 없는 원수와 마찬가였을 것입니다.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조슈번 출신의 이토히로부미 부터 아베신조까지 조슈번의 후예들을 살펴보면 그 사상이 매우 위험한 사람들이라 할수 있습니다.  아베신조 정권이 들어 서면서 부터 한일외교 관계는 헤어 나올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냉각상태에 빠져 들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나라들이 일본과 역사적인 문제로 크고 작은 마찰을 잃으키고 있습니다. 역사인식의 차이로 인한 문제와 영토문제등 일본은 지금도 아시아 지역의 문제 국가인듯 싶습니다. 특히나 한일관계 문제에 있어서는 위안부 문제도 부정하는등 일본의 망언으로 더이상 나뻐질 것도 없을 만큼 한일관계는 냉냉한 상태인데요 조슈번의 후예들의  역사인식의 기원이 되는 사상가인 요시다 쇼인을  생각하면 이들이 가진 사상이 어떤 사상인지 알수 있을꺼 같습니다.

 

 

 

 

요시다 쇼인 (일본어: 吉田松陰 よしだしょういん 길전송음[*], 1830년 8월 4일 ~ 1859년 10월 27일)은 일본의 사무라이이자 교육자이다. 쇼인은 그의 아호이고, 본명은 노리가타(矩方 구방[*]). 일본 조슈(長州)(현 야마구치 현) 하기 출생이며, 근현대적 의미의 일본우익 사상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요시다 쇼인《유수록(幽囚錄)》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홋카이도[蝦夷]를 개척하여 제후(諸侯)를 봉건(封建)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카나와[琉球]와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満州)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臺灣]과 필리핀 루손[呂宋] 일대의 섬들을 노획하여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배경이 되는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1855년 출옥하였으나 영지(領地)에 유폐(幽閉) 처분을 받았다. 1857년 숙부가 운영하던 글방[塾]의 이름을 물려받아 영지(領地)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열었다. 여기에서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뒷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주역이 되는 주요 지도자들을 다수 배출하였다.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美日修好通商条約)이 조정(朝廷)의 허락도 없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반 막부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요시다 쇼인도 막부 토벌을 위해 마나베 아키카츠[間部詮勝]을 암살하려 했으나 제자인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등이 동조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 그러다 막부에서 반막부 세력을 대대적으로 탄압한 이른바 ‘안세이[安政]의 대옥(大獄)’이 시작되자 감옥에 갇혔고, 1859년 11월 21일(安政 6년 10월 27일) 에도에서 처형되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출신들은 대부분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홋카이도의 개척과 오키나와의 일본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와 타이완, 필리핀의 영유 등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일본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일본 우익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요시다 쇼인 [吉田松陰(길전송음)] (두산백과, 두산백과)

 

요시다 쇼인은  2006년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그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던 인물로 일본의 우익단체 중에는 그의 이름과 그가 활약하던 학당인 '쇼(松)'라는 글자를 따서 그의 정신을 기리는 쇼콘주쿠(松魂塾)라는 학당이 있어 그의 학맥이 계승되리만큼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데요  쇼카손주쿠 내에 요시다를 모신 신사(神社)가 세워져 성역화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존왕양이를 주창한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이 훗날 커다란 정치가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요시다 쇼인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유신삼걸중 하나인 기도 다카요시(이때 가쓰라 고고로), 과격파 유신지사의 대표격이자 기병대의 수장인 다카스기 신사쿠 ,이토 히로부미, 그와 함께 권세를 누린 이노우에 가오루 등 유신의 주요인사들이 쇼인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출처: SBS그것이 알고싶다. 예고편]

 

오늘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영웅인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로 몰려 사형을 당할수 밖에 없었던 전말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배후인 조슈번의 후예들을 파헤친다고 하니 관심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조슈번의 후예인 아베신조가  그들의 조상의 잘못을 반성하기를 커녕 그 정신을 이어 받았기 때문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수가 없으니까요 그 세력이 무엇인지 그들의 사상이 무엇인지 아는것이 우리가 그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어때야 하는지 알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핫이슈  |  2014. 3. 1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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